2023 2 19 주일 설교 요약

할렐루야~
이번 주도 함께 예배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번 예배는 예레미야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마음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 우리를 향한 주님의 소원은 오직 ‘복’ 주시는 것 한 가지 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모든 전쟁은 승리로 예정해 놓으셨고,
‘이미’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영광으로 완성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그 영광의 때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은,
‘반드시 축복 받는 능력’, ‘반드시 응답 받는 기도의 능력’이 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됩니다.

다니엘서 10:12-14절에 이 영적인 원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단10:12-14)
그(가브리엘 천사)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 이 본문에서 가브리엘은 놀라운 말을 합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결심했던 <첫 날> 이미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천사를 막아 서는 영적 세계의 방해가 있기는 했으나 그것 역시도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영원히 막지는 못했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 다니엘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저 ‘인내’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도 할 때 ‘즉시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원리는
다니엘이나 저나 여러분들에게 모두 똑같이 적용됩니다.
다만 그 응답이 임할 때까지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냐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이냐,
그 ‘사람의 차이’만 있는 것입니다.

-자녀의 변화를 위해 기도 하셨습니까?
-> 이미 응답 받으셨습니다!
-건강을 위해 기도 하셨습니까?
-> 이미 응답 받으신 겁니다! 할렐루야!

남은건, 그 응답이 내게 도착 할때까지 인내하는 것 뿐입니다.

———

‘인내’라는 주제는 이토록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에 한 번 더 깊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 <내가 그리는 결과>가 인내를 방해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성공에 대한 그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목표’, 혹은 ‘목적’이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닐 때, 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 가정이 천국이 되게 해주세요!’
정말로 이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가 정의하고 꿈꾸는 천국의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지혜가 부족한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완전하신 주님의 계획을 다 헤아릴 수 조차 없습니다.

주님 뜻 안에서,
-우리 남편은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변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식들도 내가 원하는대로 자라나지 않을 수 있고
-재정의 상황도 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는 죽을 때까지 가지고 살아갈 ‘질병’을 축복으로 주실 수 있습니다.
또 사업체를 운영하는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상황’을 축복으로 주실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에 대해 우린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축복이 됩니까?’
-아니, 평생 불치병을 가지고 살아가는게 무슨 축복입니까?
-평생 가난하게 사는 삶이 어떻게 복이 될 수 있습니까?

평생을 물질계에 묶여 살고 있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너무도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9:1-3)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 제자들 역시도 ‘축복을 받았다면 몸은 당연히 건강해야 한다.’는,
축복에 대한 자신들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맹인된 사람은 당연히 저주 받은 사람이기에
왜 저런 저주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는지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은 축복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 사람은 죄 때문에 저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상태가 아니다.
그의 병을 통해 아버지께서 일하시려는 계획이 있으시기에
지금 저 맹인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안에서 ‘이미 쓰임 받고 있는 영광스러운 상태’임을 가르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축복에 대한 정의(기준)가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이야기도 우리에게 같은 내용을 가르칩니다.
(고후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 자신의 사역을 괴롭혔던 질병을 가지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지만 그 기도의 응답은,
‘이미 내가 너에게 준 은혜가 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너의 부족한 부분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약점일지 모르나,
네가 지금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약점 때문이다.’
‘그 약점도 없었으면 너는 너무나 잘난 사람이기에 내가 필요 없었을 것인데,
그 약점으로 인해 나와 함께 할 수 있으니, 그 약점이 네게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상황이 내가 원하는 축복의 모습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니
-이미 내게 은혜가 충분합니다!
-이미 나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나는 이 땅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우리의 인내를 막는 두 번째,
(2)내가 원하는 때 (시간)

축복에 대한 나의 상(그림)을 버린다 하여도 그 ’시기‘를 내가 정해놓고 기도를 시작하면
이 역시도 인내를 지속하기 어렵게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정한 불완전한 시간이 아닌, 하나님이 정하신 완전한 때에 일하시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순간, 즉시로 병이 낫는 경우가 있고 여러 번 몸을 씻어야 몸이 낫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때에 바라는 일들이 이뤄지길 소망합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행전 1:6 – 8)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로마도 우릴 괴롭히고..복음을 전하기도 쉽지 않고..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기도와 예배만 드리고 힘들게 살아야 합니까?
..제자들이 물어보니, 주님은 ‘그 때’에 대해 분명히 말씀 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그 시기는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 있으나 주님의 때가 이르면 너희가 성령을 받을 것이고,
‘성령을 받기만 하면‘ 너희는 온 유대와 사마리와 땅끝까지 변화 시킬 수 있을 엄청난 능력이 생길 거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때’는, 오직 ‘성령 충만을 받는 순간’ 외에는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자녀의 문제로 마음 고생이 많으십니까?
자녀를 먼저 혼내지 말고, 먼저 기도하고 인내하십시오.
언제까지? ‘내게 성령이 임할 때까지.’

-배우자의 문제로 고민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참고 기도하고 인내하십시오.
언제까지? ‘내게 성령이 임할 때까지.’

-믿지 않는 배우자나 부모님에게 교회 가는 것으로 바가지 긁지 마세요.
복음을 강요하지 마세요. 그저 간절히 생명 다 해 중보하십시오.
언제까지?
저 사람이 변화 될 때까지가 아닙니다.
‘내게 성령이 임할 때까지.’

상황을 내 소원대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아 내가 변하는 것에 기도의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내 남편이 제대로 된 수입이 없어서 우리 가족이 주님을 더욱 붙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마누라가 내 말을 듣지 않음으로 내가 스스로 회개하고 돌이킬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자녀들이 내 욕심과는 너무 다른 방향으로 자라나기에
이 아이들의 참 부모가 내가 아닌, 주님이심을 다시 한 번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 오직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내 원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 없다 해도 모든 상황을 기쁨으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이 부어집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세상과 환경이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이번 주 주님이 주신 말씀과 같이,
우리의 모든 시간의 기준이 성령의 때에 정렬되기 원합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이 찰 때까지 기도함으로
모든 상황 가운데 최후 승리하는 한 주 되길 축원합니다.

힘내세요!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

[가정 예배 주제]

1. 혹시 간절한 기도의 제목들을 가지고 있나요?
지금까지의 기도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만약 이전의 기도들이 특정 사람과 상황을 변화시키는데 초점이 있었다면
이번 한 주 동안 오직 성령만을 구하는 새 기도문을 작성해 보길 권합니다.

– 믿지 않는 이웃을 변화시켜 달라는 기도 대신,
내게 성령의 충만함을 부으셔서 내 안의 권능과 예수의 성품을 보고 그가 주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 생활에 문제가 있는 자녀를 변화시켜 달라는 기도 대신,
부모 된 우리에게 먼저 성령을 넘치도록 부으셔서 그리스도의 성실과 열심이 아이들에게도 흘러가 젖어들게 하옵소서.

2.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을 받은 나의 모습을 그려보세요.
– 배우자를 어떻게 대하나요?
– 가정 안에서 자녀들에게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나요?
– 부모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순종하는지 자세히 묘사해 봅니다.

-> 한 주 동안 기도 중에 받은 ‘성령 충만한 모습’ 그대로 살아보고 그 열매를 다음 주 예배 시간에 나누어 봅시다.

3. 내가 지금껏 생각했던 성공(행복)의 기준을 적어보세요.
-배우자 / 자녀 / 재정
-부모님 / 능력 / 꿈(비전)

ex)
-배우자는 000하게 변했으면 좋겠다.
-자녀는 000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000한 꿈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4. 위 ‘3번’에서 적은 내용을 생각하며 이번 주 말씀을 다른 가족들에게 나의 언어로 설교해 봅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설교를 듣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나의 입술로 선포하고 가르칠 때 비로소 삶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가정 안에서 주일 설교 내용을 나의 입술로 다시 선포하는 은혜의 시간을 꼭 가지시길 축원합니다.

다음 주에 더욱 생명 넘치는 얼굴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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