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5 주일 설교 요약

할렐루야~!
이번 주도 함께 예배드릴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금 주 화요일에 새학기 개강을 합니다.
이번 한 학기, 하나님께서 우리 메타노이아 교회와 학교에 특별히 내려 주신 정체성이 있기에 함께 나누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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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크리스천들은 일상이 곧 영적 전쟁입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전쟁터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원수는 때론 배우자와 자녀의 모습으로, 때론 재정이라는 상황으로 다가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의 평안과 하나님의 성품을 깨뜨리려 합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승리를 위해 ‘기도’라고 하는 무기를 쥐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진짜 능력은 내 아픈 감정을 쏟아내고 위로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를 우겨싸고 있는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고 최후 승리케 하는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정확히 배우고,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법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의 신앙생활은, 군인이 총쏘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전쟁에 나가는 것과 똑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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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했던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예수님과 오랜 시간 동행하던 제자들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능력의 비밀이 바로 ‘기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런데 제자들도 기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조상 대대로 여호와를 섬겨 온 유대인들이었기에 기도는 곧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그저 하던대로 기도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기도하시면 귀신이 떠나갑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납니다. 소경이 눈을 뜹니다.

그래서 성경의 기록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뭔가를 적극적으로 가르쳐 달라고 요구했던 몇 안 되는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기도하는 법’ 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의 전문가]
일반적으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해당 분야에 대해 깊이있는 연구와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또한 그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재정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과 행복을 여는 기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연구하고 투자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자녀를 교육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과목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학부모님들은 시간과 노력, 재정의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아이의 학업 능력이 향상될 때, 그 인생이 더 나아질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세상의 지식과 교육으로 학습시켜 한 분야의 전문가로 자라나게 하는 것보다
먼저 기도할 줄 아는 아이로 양육할 때, 하나님께서 더욱 위대하게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우리는 기도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 역시 기도의 전문가들로 우선 양육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공동체에 ‘기도의 용사’, ‘기도의 사람’과 같은 일반적인 명칭이 아닌, 기도의 ‘전문가’라는 키워드를 주신 데에는
세상적인 능력을 갖기 위해 의지적으로 노력하고 투자하는 것처럼 기도의 능력을 성장시키는데 더욱 노력을 쏟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2023년도 새학기, 하나님께서 이 공동체를 위해 큰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올 해 메타노이아 교회와 학교, 모든 성도의 머리 위에 기도의 영이 강력하게 부어질 것입니다.

주님이 명하시는 기도의 훈련들을 충실히 이루어 나갈 때,
우리의 노력으로 결코 이룰 수 없는 기도의 경지가 열릴 것입니다.

도전합니다.
2023년에는
기도의 능력이 열려, 영안이 열리고, 영안이 열려 인생이 열리는 은혜가 경험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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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왜 어렵게 느껴질까?]
평소에 말을 잘 하는 누군가에게도 대표기도를 부탁해 보면 민망하리 만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우리는 기도를 어렵다고 느끼게 되었을까요?

일단 우리가 접하는 기도문 자체가 일상적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성경의 어투>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방법은 아니지만 새신자들이나 어린아이들이 처음 기도를 배우기 시작할 때 큰 언어적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런 있어 보이는 어투로 멋드러지게 기도하지 않으면 마치 기도를 못 하는 사람인양 스스로 위축되기도 하고,
괜히 기도의 능력도 약하지 않을까 오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참고하는 ‘주기도문’ 역시 친숙하게 다가가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내가 도저히 손 닿을 수 없는 머나 먼 ‘하늘’에 ‘아버지’가 계신다고 합니다.
시작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개역개정 성경의 이 표현은 원어의 느낌을 잘 살리지 못한 번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기도는 그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당시 ‘아람어’라는 언어를 사용하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아람어로 예수님은 기도를 이렇게 시작하십니다.

아분- 드바쉬 마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니트 카다-쉬 쉬마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티테 말쿠토쿠(ㅎ)
(나라이 임하시오며)
네흐웨 세비요노크(ㅎ)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에이카노 드바쉬 마요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은 기도의 시작에 가장 먼저 이 단어를 선포하십니다.

‘아분-‘

사전에 따르면 ‘아분’ 이란 단어는 아람어 ‘Abba’의 변형이며, 유다의 ‘어린이’들이 아버지를 부르던 말.이라 설명 되어 있습니다.
서른 살이 넘은 예수님께서 아무런 격의 없이 하나님을 향해 ‘아빠’라고 부른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 서기관 등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광장 중앙에 서서
손을 들고 멋들어진 기도문을 외우면서 자신의 영적 권위를 자랑하기 좋아했으나
예수님은 그런 종교적인 틀을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빠‘라는 단어로 기도를 시작하심으로
기도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행위가 아니며, 마치 어린 아이들이 아빠와 대화하듯 그저 자연스럽게 말하면 되는 것이라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빠’의 더 큰 의미]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게 하신데에는 더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미 날때부터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 영광인지 잘 와닿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까지만 해도 인간은 그저 더럽고 부족한 죄인으로만 여겨졌기에 그 미천한 입술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기시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상 속에서 신성모독으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알면서도 ’아빠‘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며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기도는 가장 먼저 ’너희의 정체성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자주 잊고 지내는 사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내 DNA의 근원이 누구인지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죄악으로 똘똘뭉쳐 소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마귀의 자식들이 아닙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아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가장 고귀하고 거룩한 ‘왕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왕자의 옷에 진흙이 묻었다고 해서 그 정체성이 거지로 바뀌는 것이 아니듯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정체성은 결코 변할 수 없는 왕의 자녀임을 선포합니다!

[기도의 변화]
오늘 부터 이 말씀의 능력을 받아, 우리 기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만 급급한 걸인처럼 기도하지 마세요!
불필요한 정죄감에 빠져서 죄인처럼 기도하지도 마십시오!
아무데도 의지할 곳 없는 막막한 고아처럼 기도하지 말고!

세상의 모든 권세를 지닌 왕의 자녀 답게!
모든 죄악들이 다시는 나와 내 집에 틈 타지 못하도록 물리치십시오!
나와 내 가정, 이 나라를 불법적으로 묶고 있는 어둠의 영들을 꾸짖으십시오!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신 재정의 축복을 막고 있는 모든 방해하는 영들을 향해 승리를 선포하십시오!

오늘부터 하나님 자녀됨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는 우리 메타노이아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힘내세요!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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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예배 적용]

1.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기도문 작성하기.
-기도를 잘 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 하게도 기도를 잘 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기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 아빠와의 대화임을 잊지 마세요.
-지금 내 안의 어려움들, 솔직한 심정들을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는 생각으로 모두 적어 보세요.
-격의와 형식이 없을수록 자연스럽고 친밀한 대화가 가능하듯, 기도의 형식과 그럴듯한 단어들을 일체 고민하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기도문의 수준은 ‘조금 유치하지 않나..?’ 싶을 정도가 적당합니다.

ex) 아빠…요즘 000가 너무 힘드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2. 어린 왕자의 정체성으로 기도문 작성하기.
-이번에는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이뤄줄 수 있는 든든한 아빠(왕)를 가진 아이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위 1번에서는 그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어린아이의 편지였다면,
이번에는 지금 나를 괴롭히는 상황들에 대해 아빠의 이름으로 혼내주세요.

ex)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업아! 아빠가 너 잘 풀리라고 하셔!
-내 감정을 화나게 해서 거룩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 원수야! 아빠가 너를 가만 놔두지 않으실 거다!
저리 가!

3. 육신의 아빠에 대한 기도하기
-육신의 아빠와 좋은 관계를 쌓아 온 사람들은 대부분 영의 아빠인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러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해도 큰 염려 없이 하늘 아빠에게 툭~ 맡겨드리기 쉽습니다.
-반면에 아빠의 보호와 안정감이 필요했던 순간에 육신의 아빠의 무책임이나 부재를 경험하게 되면
그 ‘아빠’라는 이름이 갖는 완전한 책임과 보호를 기대하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하는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혹시 나의 인생이 그러했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를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는 기도를 하세요.
그리고 육신의 아빠가 채워주지 못했던 빈 자리에 하늘 아빠의 것으로 더 많이 채워주시고 위로해 달라는 기도를 해보세요.
-우리 주변에도 육신의 아빠에 대한 상처를 가진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 아빠의 자녀됨, 기쁨과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걱정과 근심과 무기력함 가운데 신음하는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신다면 그들을 위해 중보해 주세요.

———

이번 한 주,
위로하시는 아빠 아버지, 나의 모든 부족함까지도 안아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아빠의 무한하신 사랑이 경험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이 온전히 회복되게 하시어서
우리가 지금까지 습관처럼 해왔던 기도의 수준을 넘어
악한 영들을 쫒는 기도, 세상을 진동케 하는 기도의 새 지평이 이 교회 위에 열리게 하옵소서.

메타노이아 모든 성도분들,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다음 주일에 더욱 빛나는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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