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함께 예배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두 번째 창세기 강해를 나누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다루었던 내용을 조금 더 깊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가장 처음 창조하신 것은 빛이 아닙니다.
처음도 끝도, 시간도 공간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상태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태초'(레쉬트)라고 하는 시간의 개념을 가장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시간을 가장 먼저 창조하셨다는 것은
창조하신 모든 만물 중에 ‘시간’이란 것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속성과 가장 닮아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우리는 시간 안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하고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시간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1) 시간은 멈추지 않고 영원히 흐릅니다.
(하나님의 영원성, 영속성)
(2) 시간은 방향(과거->현재->미래)을 역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성, 방향성. 식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뜻을 돌이키시지 않는 하나님)
(3) 시간은 요동하지 않고 항상 일정하게 흘러갑니다.
(하나님의 신실성. 언제나 동일하신 주)
(4)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완벽하게 공평하신 공의의 하나님)
(5) 시간은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6) 시간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지만, 시간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심판의 하나님)
(7) 그리고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시련의 아픔도,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누군가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해결 됩니다.
-> 사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완성시키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면 결국 그 시간의 끝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 하십니다.
우리 신앙은 결국 이 시간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최후 승리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인내’라고 가르칩니다.
(로마서 5:4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야고보서 1:4 )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구원의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자들이 말세의 징조와 구원의 조건에 대해 질문할 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마태복음 24:6 – 11)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조건을,
-큰 사역을 하는 자.
-무언가 세상 안에서 많은 것들을 이룬 자로 설명하시지 않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결국 구원을 얻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에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부부간의 문제
-자녀와의 관계
-사업의 어려움들이 그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의 어려움에 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옷자락을 끝까지 붙듦으로 말미암아
최후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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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따져보니 이렇게 레쉬트(시간)과 하나님이 정말 공통점이 많지요?
우리 메타노이아가 시간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간 개념을 철저히 지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속성과 닮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교회는 하나님과 닮아가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합니다.
<시간에 충성하십시오>
이 말씀의 적용을 우리 교회에서는 이렇게 도전합니다.
[예배 시간에 충성하십시오]
교회 예배 시작은 12시 입니다. 절대로 늦지 말아주세요.
늦지 않는 것을 넘어서 1~2시간 정도 일찍 교회에 나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예배 시작 전에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1) 성찬 요리를 포함하여 예배의 전반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 2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한 명의 성도분께서 거의 모든 준비를 도맡아 하고 계십니다.
식사 준비부터 예배 전 세팅과 정리, 중보기도에 이르기까지 혼자 모든 일을 하시는데
함께 손과 마음을 모아 짐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이 교회는 ’가족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아직 어색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아직 본인의 마음이 다 열리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크고 작은 일을 함께 고민하며 협력하다 보면 언젠가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공동체가 이뤄질 줄 믿습니다.
(2) 주일 예배를 향한 원수들의 공격과 방해를 대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 이 교회를 주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며 기대하십니다.
인력도, 체계도 아직 완전하지 않은 작은 교회이기에 조금의 틈만으로도 예배의 분위기가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영적공격이 집중되는 이 교회의 예배를 위해 통성으로 대적하며 기도해 주십시오.
(3) 무엇보다도 주일 말씀을 듣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공간에 와서 똑같이 예배를 드리는데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고 삶이 변화됩니다.
반면 누군가는 설교에 집중도 잘 안되고, 아무런 감동도 변화도 없이 그냥 왔다 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 화려하지 않은 예배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내 마음 밭의 문제입니다.
나의 마음 밭이 좋은 땅으로 기경(준비)되어 있으면
말더듬이 노숙자가 와서 설교를 전해도 은혜와 생명으로 심겨집니다.
하지만 내 마음 밭이 가시덤불 같고 돌작 밭 같다면 마가복음 6장에 기록된 예수님 고향 사람들과 같이
주님이 직접 오셔서 진리를 전하셔도 강팍한 마음이 깨어지질 않습니다.
최소한 예배 한 두시간 전에는 오셔서 강팍해진 내 마음 밭을 기경하십시오.
진정한 신앙의 훈련이란
하나님의 두렵고 위대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거룩한 상태로 나를 준비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말씀이 이것을 설명합니다.
(마태복음 22:1 – 13)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아멘!)
->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보잘것 없는 청년 하나가 전하더라도 선포되는 ‘말씀은 곧 주님’인 것입니다.
그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초청하시는 주일 생명 잔치 자리에 일찍 나오셔서 기도와 예배로 나의 몸과 마음을 위한 거룩한 옷을 준비하십시오.
-> 교회가 유아실 방도 없어서 예배의 분위기가 아무리 어수선해도,
-> 설교의 내용이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가 듣고싶지 않은 내용, 내가 피하고 싶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온전히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생명 다 해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부어달라고 기도하세요.
-> 너무 허리가 아프고 피곤해서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 우리 아빠에게
독수리가 날개쳐 올라가는 듯 한 새 힘을 제발 좀 부어달라고,
피가 흐르도록 기도하며 말씀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겁니다.
청함 받아 생명의 잔치에 겨우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택함을 받으셔야 합니다!
-> 시간에 충성하여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닮아가는 우리 되길 축원합니다.
-> 시간에 충성하여서 주님 맞을 옷을 영광되이 준비하는 지혜로운 신부들 되시길 다시 한 번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지난 시간에 다룬 두 번째는,
이 ‘레쉬트‘(시간)란 개념이 생김으로 자연스럽게 처음과 끝, 앞과 뒤, 위와 아래라고 하는 ‘질서’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단어 <레쉬트>는 두 가지 사전적 뜻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시간’과 ‘질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미 나누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시간과 질서를 가장 먼저 창조하셨다는 것은 ‘질서’라는 것이 하나님의 세계관 안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란 뜻이 됩니다.
질서는 하나님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세상도 당연히 질서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성경을 ‘질서’라는 키워드를 기반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 그럼 창세기의 다음 구절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창세기 1:3 – 5)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밝은 세상을 만드시고자 빛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빛을 만드심으로 정리되지도, 정의되지도 않았던 ‘하루’ 라고 하는 <시간의 질서>가 구체화 되었습니다.
(창세기 1:6 – 10)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창세기 6절부터는 시간이라는 <수평적 질서>를 이루신 직후에 궁창, 즉 하늘을 만드셔서
가장 위를 하늘,
그 아래를 땅,
가장 밑을 바다로 나누시며 <수직적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사실 천지창조는 혼돈하고 공허한 것들에 하나님께서 ‘질서’를 부여하시는 과정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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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창세기 1장 11절부터 12절까지 두 절만 더 강해하고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11 – 12)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세상 안에 처음과 나중, 위와 아래의 ‘질서’를 세우신 후에 ‘비로소’ 허락하신 것이 있습니다.
<열매맺는 나무>를 내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질서가 잡히지 않은 인생 위에 축복의 열매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축복의 열매>를 맺는 크리스천의 조건을 아주 명료하게 정리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종(직원)은 주인(상사)에게 순종하고,
-제자는 스승에게 순종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할 때 축복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가다 이렇게 불평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니, 무슨 부모고 상사고 남편이고 존경 할만한 구석이 있어야 순종할 것 아닙니까?‘
실제로 우리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인 ’질서‘를 깨는 중범죄를 매일 저지름에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자기 합리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존경할 만한 구석이 없으니 권위에 순종하지 않겠다는 마음,
-내 마음에 맞지 않는 명령을 내리니 권위에 순종할 수 없다는 결론은 완전히 빗나간 신앙입니다.
이런 교인들은 결코 그 인생에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13:1 – 2)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 성경은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악한 왕이건 선한 왕이건,
꼰대같은 대표님이건, 나와 정치관이 다른 대통령이건,
하나님께서 우리로썬 이해할 수 없는 완전하신 계획을 가지고 세우신 ‘질서’라는 겁니다.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경고하십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은,
존경할 수 없고 순종할 수 없는 권위 앞에
‘순종한 자’와 ‘순종하지 않은 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실 때에도 ‘의도적으로’ 흠모할 만한 부분이 하나도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너희가 예수를 따를 수 있겠느냐? 우리에게 도전하시는 겁니다.
다윗왕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힘이 강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엄청난 강점이 있었지요.
그것이 바로 ‘질서’(권위)에 순종하는 능력’이었습니다.
-> 왕을 뽑는 자리에 아버지가 오지 말라고 하면,
다윗은 두 말 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 한창 싸움중인 위험한 전쟁터에 형들 도시락을 전하라 해도 두 말 않고 순종합니다.
->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왕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무려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다윗은 절대 사울왕을 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함께 있던 부하도, 백성들의 민심과 하나님의 뜻을 들먹이며 사울 왕 죽일 것을 종용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권위자를 어찌 내가 손 댈 수 있단 말이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꾸짖으며 사울을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로써 끝까지 존중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 중심을 보시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46 – 47)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 존경할만한 권위자를 존경하면 아무런 상도 없습니다.
당연한 일을 했는데 무슨 상을 받겠습니까?
존경할 수 없는 권위자가 내린, 순종할 수 없는 명령에 순종하십시오.
주님께서는 그 하나님 마음에 합한 한 사람을 지금도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이번 한 주, 이 말씀을 마음판에 굳건히 새김으로
주님이 파송하신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각 삶의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메타노이아 모든 성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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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말씀 붙들고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실 때,
오직 하나의 철학이 있으셨습니다.
‘절대자는 명령’하고 피조물은 ‘오직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악이 틈타기 전인 창세기 1장에는
이후 성경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기록상의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무언가 명령하시면 예외 없이! 반드시 뒤에
‘그대로 되니라’
-라는 문장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 앞에,
우리의 신앙고백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여러분 인생에 말씀하시면 그대로 행하십니까? 조건과 이유를 먼저 대십니까?
오늘 선포된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무너진 신앙의 본질이 수축되는 시간 되길 축원합니다.
질서에 순종하는 한 가지만 가지고도 신앙생활에 실패가 없습니다.
만약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내 삶에 진정한 평안과 돌파가 경험되지 않는다면
오늘 선포된 말씀을 붙들고 전심으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이제 더이상 그림자를 붙들고 씨름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질서와 순종이라는 본질의 영적전쟁을 선포합니다!
우리의 그 작은 순종을 받으시고
오늘 주님은 주의 위대한 일을 행하시옵소서.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아 하늘의 질서 가운데 정렬될 지어다!
주님이 내 삶에 명령하시면
‘그대로 되니라‘ 기록되는 새 생명책의 장이 열릴 지어다!
우리 순종의 마음을 구하며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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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예배 양식]
+주일 마다 나누어 드리는 설교 정리용지가 있습니다.
-양식에 맞추어 다음 내용을 가정 안에서 꼭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1) 하나님께서 왜 이런 설교를 듣게 하셨을까?
2)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
3) 내가 생각하는 설교의 결론은 무엇인가?
4) 이전에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무엇이 있는가?
5) 이번 한 주, 나는 설교 말씀에 근거해서 어떤 새 일을 행할 것인가?
+) 특별히 이번주에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권위자를 모두 적어보세요.
-그 중에서 도저히 존중하기 어려운 권위자가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권위자가 내리는 명령 중에서 끝까지 순종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기도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혹시 내가 가정과 회사 안에서 최고 권위자라면 주님이 맡기신 피권위자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가정, 일터 등에서 내가 새롭게 행할 일들을 적어보세요.
한 주간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선포하신 말씀을 굳건히 붙들고 승리하는 시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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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주중에 1:1양육 시간이 있습니다.
가능한 시간을 내셔서 주일 설교에 대한 적용점과
신앙의 방향성을 체크하는 시간 가지시길 당부 드립니다.
원하시는 날짜 기준으로 1~2일 전에 제 개인 톡으로 말씀 주시면 시간 비워두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변화와 돌파의 경험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