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이번 주에도 함께 예배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우리 찬양팀 아이들 시간이 갈수록 실력이 일취월장 하고,
김은희 성도님 간증도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윤은희 성도님 은혜 넘치는 특송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배 한 두시간 전에 미리 나와 방해하는 영들을 쫒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공간을 채워주신 모든 성도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곳이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가장 크게 사용하시는 교회 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복습 내용은 23년 03월 19일 설교 요약본 참고 바랍니다———–
[하늘]
오늘은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해 말씀하신 ‘하늘’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분’ 드바시 마요.]
-> 아빠! 당신은 하늘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가장 먼저 아분! 아빠!라는 단어로 기도를 시작하시며
나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늘 아빠의 자녀임을 가장 먼저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기도의 두 번째 선포로, 그 아빠가 ‘하늘’에 계심을 말씀하시는데,
헬라어로 ‘하늘’을 표현하는 단어는 두 개가 있습니다.
‘에푸라니오스’와 ‘우라노스’라는 단어입니다.
(1) ‘에푸라니오스’는 우주, 천체와 같이 물리적인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늘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2) ‘우라노스’는 보좌가 계신 하늘(즉 영계)과 (우리 주변을 둘러싼) ‘공기’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 성경은 의도적으로 ‘우라노스’라는, 우리 일상과 아주 가까이 있는 하늘로 예수님의 기도를 기록합니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꼐서 ‘하늘’로 표현하신 ‘영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크리스천으로써의 나의 권능의 크기가 결정 됩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써 나의 신앙 생활의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이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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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번역비교] [유사말씀]
->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 하심에도
우리의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문제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윳놀이와 같은 작은 게임을 하더라도 그 규칙을 정확히 알아야 전략을 세울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구조에 대해서 조차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가 부터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18-5:1)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두 세계를 창조 하셨습니다.
-물리적 세계와 영적 세계가 그것입니다.
두 세계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질계는 잠깐이요 영계의 것들은 영원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물질계에는 사람, 사물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이 존재하며
영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 하나님,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마귀, 귀신이라고 하는 악한 영적 존재들도 영계에 있습니다.
모든 종교들은 대부분 물질계와 영계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불교도 사후 세계를 이야기 하고,
-힌두교도 신들이 사는 영계를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신들이 모여 사는 영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계와 영계가 서로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종교’가 달라집니다.
심지어는 같은 ‘기독교’를 믿는다 하더라도
이 영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면 완전히 다른 종교를 섬기는 것 같은 신앙생활의 차이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영계와 물질계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을 ‘영적 세계관’이라 합니다.
세상에 여러가지 종교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 세계관은 ‘헬레니즘’ 세계관과 ‘헤브라이즘'(유대) 세계관, 딱 두 가지로 정리 됩니다.
[세계관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1. 먼저 <헬레니즘 세계관>은 이방 신, 즉 태양신을 가장 위대한 신으로 섬기던 그리스 로마의 세계관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물질계는 너무나 불완전하고 더럽고 추악한 곳이며,
-반면 신은 완전하신 존재이기 때문에 신들이 거하는 영계는 인간계와 완전히 ‘분리된 곳’에 위치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스/로마 뿐만아니라 대부분 이방 종교들이 영계와 물질계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이 관점을 ‘이원론적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방 종교들은 모든 것을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으로 이분화 시키려 합니다.
(1) 신들이 거하는 곳은 인간계와 완전히 분리된 머나 먼 하늘 위 어딘가 이며,
(2) 성전의 형태 역시 어마어마하게 크고 웅장한 양식을 사용하여
인간들이 거하는 집과는 구별된 형태와 의미를 부여합니다.
(3) 더 나아가 부족한 인간들이 완전한 세상인 영계(천국)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죄악 된 육신을 벗는 것, 즉 죽는 것 뿐이라 믿습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물질계와 신들이 살고 있는 영계는 결코 섞일 수 없으며, 멀리 분리되어 있다.
다만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사람을 통해 영계가 가끔 열려서 영적인 것들이 경험될 수 있다는 이 사상은
당시에 그리스 로마가 온 세상을 정복하면서 오늘 날 대부분의 문화권이 공유하는 상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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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헤브라이즘 세계관, 즉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는가?]
우리 역시도 영계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위와 같이 배워왔고 책과 매체들을 통해서도 많이 접했기에 이원론적 세계관이 익숙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계는 머나먼 곳에 위치해 있으며,
가끔씩 특별한 순간에만 문이 열려서 영적인 작용들을 경험 할 수 있다는 이 이론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많은 헛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짜증을 내고 낙담합니다.
심지어는 왜 짜증이 나는지,
왜 권위에 순종이 안 되는지 스스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이 말 그대로 내 의지와 선택이 아닌겁니다.
성경은 세상이 설명하지 못하는 이 현상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야고보서 3:14 – 16)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교만)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 우리가 시기와 질투, 다툼, 교만과 거짓말 하는 모든 악한 일들이
내 성격이나 호르몬의 작용 때문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귀신’이라고 하는 영적 존재가 우리 안에 죄를 뿌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낙심과 짜증, 원망과 미움의 감정들이 아주 가끔씩 저 하늘 위의 머나먼 영계가 열릴때만 찾아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수시로 찾아옵니다.
오히려 화나고 짜증나고 낙심하는 일 자체가 우리의 일상입니다.
마귀는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한 시도 우리를 놓지 않고 우리와 함께 있어요.
영계에 있는 마귀가 우리와 항상 함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우리 역시도 영계에 속해 있다는 말이 됩니다.
마귀만 우리와 항상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16 – 17)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이 동떨어진 다른 세계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령님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두 세사람 모인 곳에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위에서는, ‘볼지어다!'(이두!)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파스:매일, 전체)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는 것을 상상하고 막연히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다'(이두)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거하시는 영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계는 절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연결되어 있어요.
-> 이것을 히브리적 세계관, 일원론적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관이 정립이 되어야 비로소 성경의 내용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열왕기하 6:15 – 17)
13. (아람)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 물질계의 것들에 집중하느라 영계의 것들을 못 보고 있습니다.
16. (엘리사가)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다른 것을 보고 있습니다.
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 본문에 나온 엘리사 기도의 핵심은,
엘리사가 기도하니 그제서야 하나님이 저 하늘 위에서 불 병거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구하기 전부터
나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문제들보다 더 큰 하늘의 불 병거를 하나님이
<먼저> 보내셨고,
<이미> 나를 항상 지키고 계셨던 겁니다!
여기서 기도의 중요한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저 적군의 병사들을 다 때려부술 수 있도록
나에게 원래 없던 새로운 힘을 주세요!’ 이걸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이미 일 하시고 계시고, 이미 승리를 예정하신 그 영계의 일들을 ‘보기 위해’ 하는 것이 진짜 권능의 기도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이들이 나아지고 있는 징조를 보면 마음이 평안해지겠지?
아니예요!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뭐가 하나 나아지면 더 많은 것을 바라면서 또 근심거리를 만들어 내고야 맙니다.
아이들의 발전되는 모습이 아니라
아이들을 이끄시는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평안이 찾아 오는 것입니다.
-사업도, 관계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한 주, 우리의 영안이 반드시 열리도록 기도합시다.
원컨대 우리 부모들과 일꾼들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이미 우리 아이들과 이 사업체를 선택하시었고,
택한 우리 자녀들과 이 일터 가운데 이미 함께하시며
지금!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완성하시는 주님을 보는 영의 눈이 열리는 한 주 되게 하옵소서.
/////////////////////////설교 마무리 기도 선포 //////////////////////////////
오늘 이 말씀 붙들고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사무엘상 3:1 – 3)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 우리는 지금의 시대에 와서 영계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성경은 영계가 보이지 않는 것, 천사를 보지 못하는 일들이 굉장히 일반적이지 않은 일인 것처럼 기록합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구를 어항 같이 만드시고 그 안에 금붕어 같은 존재로 우리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함께 대화하고 거닐고 사랑을 나눌 존재로 지으셨기에 인간은 당연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화할 수 있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임이 맞습니다.
사무엘서는 영계의 계시가 끊긴 원인이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해 졌기 떄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말씀이 희귀해졌다‘는 의미는, 원어로 <하야 야카르>라 하여
’말씀을 따르는 것‘이 굉장히 희귀해졌다는 뜻입니다.
유대민족이니까 형식적인 종교인이 되어서
매일 말씀은 보고 듣고 묵상하고는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내 삶의 우선순위로 두고 순종하는 자들은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당시에 위대한 지도자로 존경받았던 엘리 제사장이 아닙니다.
성전에 맡겨진 종, 사무엘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젖을 떼자마자 성전에 맡겨진 아이입니다.
하루 종일 성전을 청소하고 허드렛일을 했던 소년이었지요.
왜 하나님은 당대의 영적 지도자를 통해 말씀하지 않으시고
가장 보잘것 없는 종을 통해 말씀하셨을까요?
2절, 3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그 성전에서 가장 높았던 엘리 제사장은
당연스럽게 자기 처소에 가서 편안하게 잠을 청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성전 허드렛 일을 마친 사무엘은 어디에서 잠이 듭니까?
자기 처소로 가서 잠을 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궤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가서 기도하다가 잠듭니다.
엘리 제사장이 특별히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어요.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가 응당 누릴 수 있지만
그 최소한의 누리는 것 조차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모든 시간과 정성을 내어드렸던 사무엘을 통해 민족을 이끄시기로 결정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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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대해 배우는 이 교회의 시즌 가운데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 앞에 엎드렸던 사무엘의 영성이 충만하게 임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노력과 결단으로 더할 수 없는 우리의 기도 위에 성령의 능력을 더해주옵소서.
우리의 기도가 세상을 진동케 하는 권능이 되게 하시고
주님을 일하시게 하는 능력이 되기 원합니다.
나의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고,
오직 기도에 생명을 다함으로
지금까지 열리지 않았던 인생의 모든 막힘들과 우겨싸임들이
완전히 돌파 되는 한 주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이끄는 유일한 힘이
오직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기도와 능력의 주인 되신 아버지 앞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 가정 예배 양식 //////////////////
+주일 마다 나누어 드리는 설교 정리용지가 있습니다.
-양식에 맞추어 다음 내용을 가정 안에서 꼭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1) 하나님께서 왜 이런 설교를 듣게 하셨을까?
2)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
3) 내가 생각하는 설교의 결론은 무엇인가?
4) 이전에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무엇이 있는가?
5) 이번 한 주, 나는 설교 말씀에 근거해서 어떤 새 일을 행할 것인가?
한 주간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선포하신 말씀을 굳건히 붙들고 승리하는 시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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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주중에 1:1양육 시간이 있습니다.
가능한 시간을 내셔서 주일 설교에 대한 적용점과
신앙의 방향성을 체크하는 시간 가지시길 당부 드립니다.
원하시는 날짜 기준으로 1~2일 전에 제 개인 톡으로 말씀 주시면 시간 비워두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변화와 돌파의 경험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